1717년. 대전쟁이 끝난 바다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략선원과 화약 냄새만이 남았다. 카리브의 낙원은 해적의 소굴이 되었고, 대서양에는 설탕과 은과 소문이 오간다.
그리고 항구마다 같은 문장이 찍힌 계약서가 늘어난다 — 물수리 문장. '오스프리 상사'. 항로를 사고, 사람을 사고, 침묵을 사는 자들.
세 사람이 각자의 이유로 닻을 올린다. 수평선은 검고, 바람은 아직 주인이 없다.
낭트, 루아르 강가의 '뒤부아 상회'. 압류 딱지가 붙은 문 앞에서 채권자들이 돌아간 뒤, 엘렌은 아버지의 장부를 밤새 다시 읽었다.
…이상해. 이 채권 세 장, 발행일이 다른데 잉크 번짐이 똑같아. 같은 날, 같은 펜으로 쓰였다는 뜻이야.
아가씨, 늙은 뱃놈이 장부는 몰라도 이건 압니다 — 상회가 망한 게 아니라, 누군가 망하게 만든 겁니다.
증명하려면 돈과 신용이 필요해. 남은 건 스쿠너 '이롱델' 한 척… 좋아. 장사로 되찾는다. 뒤부아의 방식으로.
이롱델은 낡았지만 바람 하나는 잘 탑니다. 첫 짐은 뭘로 하시겠습니까?
포도주 여덟 통이 선창에 실렸다. 몰락한 상회의 후계자가, 대서양이라는 장부의 첫 줄을 쓴다.
첫 이문입니다, 아가씨! 항구 세관원 놈이 눈을 비비고 다시 세더군요.
이문은 시작일 뿐이야. 신용이 붙어야 상회가 살아. — 다음은 보르도. 아버지의 옛 거래처가 있어.
보르도의 오래된 거래처, 포도주 중개상 '베르나르 영감'의 창고.
뒤부아의 딸이 배를 몬다고? 허, 세상이… 좋아, 옛정으로 통당 두 리브르 깎아 주지. 대신 하나만 묻자. 네 아버지, 정말 그 빚을 졌느냐?
아뇨. 그래서 증거를 모으는 중이에요. — 영감님, 그 채권을 사들인 게 누군지 아세요?
…항구에서 조용히 물어보거라. 요즘 낭트 채권은 죄다 한 군데로 흘러간다더라. 물수리 문장을 단 자들에게.
낭트로 돌아온 밤. 엘렌은 문제의 채권 세 장을 촛불에 비춰 보았다 — 봉랍 안에 눌린 희미한 음각. 물고기를 움켜쥔 물수리.
오스프리 상사… 대서양 절반의 해운을 쥔 그 회사가, 왜 낭트의 작은 상회를 무너뜨렸지?
작아서가 아니라, 길목이라서겠지요. 뒤부아 상회의 카리브 항로 — 그게 놈들의 지도에 방해가 됐던 겁니다.
그렇다면 되찾을 방법도 하나뿐이네. 그 항로를, 내가 다시 연다. — 1막 끝. 서쪽으로.
카리브로 향하는 항로. 수평선에 돛 두 장 — 하나는 검은 기, 하나는 그 꼬리를 무는 슬루프.
해적입니다! …아니, 잠깐요. 해적이 도망치고 있는데요? 뒤쫓는 쪽이 더 빠릅니다.
한나절 뒤, 추격을 끝낸 슬루프가 이롱델 곁에 나란히 섰다. 뱃전의 남자가 모자를 들어 보였다.
상선 이롱델. 이 해역은 요즘 험하오. 포트로열까지 호위해 주지 — 물론 유료로.
해적 사냥꾼이군요. 좋아요, 계약하죠. 대신 하나만 물을게요 — 혹시 '물수리' 깃발을 아세요?
…그 이름을 상인 입에서 들을 줄은 몰랐군. 아는 정도가 아니오. 내가 쫓는 놈이 그 깃발 밑에서 칼을 팔지.
그럼 우리, 거래할 게 하나 더 있네요. 정보는 화물보다 비싸니까 — 서로 반값에 합시다.
— 2막 「호위 계약」 개시. 장부와 총이 같은 편이 되었다.
브리지타운. 설탕 통을 실으려던 아침, 부두 감독이 난처한 얼굴로 다가왔다.
미안하게 됐소, 뒤부아 상회. 오늘부로 이 부두는 당신 배에 하역을 못 해 주오. …위에서 내려온 지시요. 물수리 도장이 찍힌.
항구 전체가 회사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지시가 통하죠?
통하게 만드니까 회사지. 다만… 밤에 오는 배까지 막으라는 말은 없었소. (낮은 목소리로) 그리고 나소에는, 그 회사 장부를 통째로 외우고 나온 사내가 숨어 산다는 소문이 있소.
…장부를 외우고 나온 사내라. 마튜랭, 하역은 밤에 끝내요. 그리고 — 나소로 가요.
— 방해는 증거의 냄새다. 봉쇄를 우회할수록, 진실이 가까워진다.
나소, 밀무역 시장 뒷골목. 럼 창고 이층 — 촛불 하나, 그리고 장부 없는 회계사가 있었다.
…뒤부아라고 했소? 이름은 장부에서 봤지. 계정 4417번. 위조 어음 세 장, 할인율 오 푼, 결재 코드 'A.G.'.
장부도 없이 그걸 전부 외우고 있다고요?
그래서 살아 있는 거요. 종이는 태울 수 있지만 머리는 — 아니, 머리도 태울 수 있겠군. 그래서 숨어 사는 거고.
증언해 주세요. 재판이 열릴 때까지 신변은 뒤부아 상회가 보장하겠어요. 뱃삯도, 은신처도.
…조건이 하나 있소. 그 회사가 무너지는 걸, 내 두 눈으로 보게 해 주시오.
살아 있는 장부가 이롱델에 올랐다. 이제 필요한 것은 법정 — 그리고 그날까지 살아남는 일. — 2막 끝.
낭트. 변호사 사무실의 탁자 위에 증거가 늘어섰다 — 위조 채권 세 장, 사일러스의 증언 각서.
훌륭하오. 허나 재판에서 이기려면 마지막 조각이 필요하오 — 부친의 '원본 장부'. 필적과 인장을 대조할 원본 말이오.
원장부는… 압류 때 상회 집기와 함께 경매로 넘어갔어요.
그 경매, 제가 기억합니다. 서적과 문서 일습을 통째로 사 간 자가 있었죠 — 카디스의 골동품상이라 했습니다.
카디스라. …아버지의 글씨를 돈 주고 되사러 가야 한다니. 좋아요, 갑니다. 이번엔 제값에 사 오죠.
— 3막 「결산의 날」 개시. 재판까지 필요한 것: 원본 장부, 그리고 그날까지 증인을 지키는 일.
카디스, 골목 안쪽의 골동품 서고. 책 더미 뒤에서 늙은 상인 알바로가 안경 너머로 손님을 살폈다.
낭트의 상회 장부? 있지. 요즘 인기라네 — 어제도 웬 신사가 와서 부르는 게 값이라더군. 물수리 반지를 낀 신사였지.
그 장부 주인의 딸이에요. …증명해 볼까요? 아버지는 매 장 여백 왼쪽 아래에 작게 밀 이삭을 그려 넣으셨어요. 흉년에 창고를 연 해부터의 버릇이죠.
알바로는 말없이 장부를 펼쳤다. 여백마다, 작은 밀 이삭이 있었다.
…책은 값을 부르는 자가 아니라 읽을 줄 아는 자에게 팔아야지. 정가에 가져가게. 대신 서두르게 — 그 신사, 빈손으로 돌아갈 얼굴이 아니었어.
고마워요, 영감님. 마튜랭, 밤바람이 좋네요 — 오늘 밤 출항해요.
낭트 해사법원. 방청석은 항구의 상인들로 가득 찼다. 증언대에는 장부 없는 회계사, 탁자 위에는 위조 채권 세 장과 원본 장부.
계정 4417. 위조 어음 세 장, 할인율 오 푼, 결재 코드 'A.G.'. — 제가 기입했고, 제가 기억합니다.
필적 대조가 끝나자 법정은 조용해졌다. 판결 — 채권 전부 무효. 뒤부아 상회 명의 회복. 오스프리 낭트 지점 자산의 압류와 배상.
아가씨… 아니, 회장님. 간판을 다시 달 시간입니다.
아버지가 보셨으면 뭐라고 하실까. …'장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시겠지. — 오늘 자로, 전부 결산됐어.
루아르 강가에 '뒤부아 상회'의 간판이 다시 걸렸다. 그레일링 본인은 아직 런던의 유리창 뒤에 있지만 — 그의 지도에서 항로 하나가 지워진 날이었다.
— 엘렌 뒤부아 편 완결. 배상금과 함께, 자유로운 교역의 바다가 열렸다. (에필로그는 대단원 업데이트에서 이어진다)
몇 달 뒤, 바다 위에서 소식이 이롱델을 따라잡았다 — 런던발. 오스프리 상사가 무너졌다.
낭트의 판결문이 위조의 '수법'을 밝혔고, 카리브의 어느 법정에서 나온 증언과 '사고 주문서'가 그 '손'을 밝혔으며, 전면 공개된 어느 박물지가 마지막 상품 — 감춰진 항로 — 를 지워 버렸다. 투자자들이 달아난 회사는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그레일링은 야반에 전용선으로 도주하다 여울에 좌초해 붙잡혔다. 그가 믿은 해도가, 자기 회사가 '접근 금지'로 위조해 둔 바로 그 해도였다는 것이 재판 기록의 마지막 줄이 되었다.
아가씨, 낭트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우리가 몰랐을 뿐 — 바다 곳곳에서 같은 싸움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언젠가 그 사람들과 한 탁자에서 결산을 맞춰 보고 싶네. …결산은 끝났어, 마튜랭. 이제 진짜 장사를 하러 가죠.
— 대단원. 검은 수평선 너머로, 당신의 바다는 계속된다.
자메이카, 포트로열. 총독부 서기가 서류 두 장을 밀어 놓았다 — 하나는 사략 면허 만료 통지, 하나는 해적 사냥 위임장.
하트 함장. 전쟁은 끝났고, 왕국은 이제 당신 같은 사람이 '문제'가 되길 바라지 않소. 해적을 잡아 오면 현상금, 그리고… 옛 죄는 묻지 않겠소.
옛 죄라. 내 배를 훔치고 내 선원 열둘을 노예상에 넘긴 건 코맥 로치요. 그놈 목에도 현상금이 걸려 있소?
…로치는 이제 '검은 이빨'이라 불리오. 나소 근해에서 상선을 뜯고 있지. 산 채로 데려오면 값은 두 배요.
함장, 페레그린 정비 끝났어요. 대포 여덟 문, 화약은 넉넉히. — 사냥 시작인가요?
시작이다, 조라. 먼저 잔챙이부터 잡아 실력을 되찾는다. …로치, 기다려라. 바다는 좁다.
포로 심문 끝났어요, 함장. 잔챙이지만 입은 가볍네요 — '검은 이빨'은 요즘 혼자 다니지 않는대요.
호위라도 붙었다는 건가?
그게 이상해요. 해적인데… '물수리 깃발 아래서 일한다'고 했어요. 상선단 호위 말이에요. 해적이 회사 일을 한다니.
…로치답군. 칼을 팔 곳을 찾은 거다. 나소로 간다 — 해적의 소굴에서 답을 듣지.
나소. 불탄 요새와 무법자들의 천막 사이, 늙은 해적들이 럼을 두고 떠드는 술집.
'검은 이빨' 로치? 하하, 그놈은 이제 해적도 아니야. 물수리 회사의 사슬 묶인 개지. 지나는 상선 중 어느 배를 '사고'로 만들지, 회사가 정해 준다더군.
…회사가 해적을 부려서 경쟁자를 지운다? 그게 사실이면 전쟁보다 더러운 장사군.
사실이니까 다들 입을 다물지. 로치는 보름달마다 아바나 근해에 나타난다. — 총은 내가 판 걸로 하지 말라고.
고맙군, 영감. 조라 — 아바나다. 1막은 여기까지고, 사냥은 지금부터다.
아바나 근해. 로치의 흔적을 쫓던 페레그린 앞으로, 오스프리 호송기를 단 선단이 지나간다.
함장, 저 호위선… 해적기를 반쯤 가려 놨어요. 낮에는 회사 깃발, 밤에는 검은 기라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요.
따라붙는다. 밤이 되면 정체를 알겠지.
그러나 밤이 오기 전, 선단에서 떨어져 나온 스쿠너 한 척이 먼저 다가왔다 — 상선 이롱델.
페레그린 함장님이죠? 낭트의 뒤부아예요. 저 선단이 오늘 밤 '사고'를 낼 대상이 누군지 알아요 — 바로 저예요. 그리고 그 주문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죠.
…주문서? 회사가 해적에게 돈을 주고 배를 지운다는 그 종이 말인가.
제 상회를 무너뜨린 위조 채권과 같은 봉랍이 찍혀 있어요. 증거를 원하시면 — 오늘 밤, 제 배를 미끼로 쓰세요.
— 2막 「미끼와 사냥꾼」 개시. 로치에게 닿는 길이 장부 위로 나 있었다.
그날 밤. 이롱델은 등을 환히 켠 채 미끼 항로를 달렸고, 페레그린은 달빛 없는 쪽에서 기다렸다.
자정 — 검은 기 두 척이 미끼를 물었다. 짧고 사나운 교전. 페레그린의 현측 일제사격이 선두 함의 키를 부쉈다.
적함 제압! 함장, 선실에서 이게 나왔어요. 봉랍 문서 — 물수리 도장이요.
「대상: 낭트 선적 스쿠너. 처리 후 잔금 지급. — A.G.」 …A.G. 회장 나리께서 직접 서명을 하셨군.
이제 아시겠죠. 로치를 잡아도 끝이 아니에요. 이 서명이 법정에 서야 끝나요.
그래서 더더욱 산 채로 잡아야겠소. — 서명의 주인에게, 증언할 입이 필요하니까.
보름달. 각서가 가리킨 항로 위 — 검은 브리간틴이 나타났다. 뱃머리의 문장은 지워져 있었지만, 키를 잡은 실루엣만은 지울 수 없었다.
…로치. 5년 만이군.
(확성 나팔 너머로) 하트 함장님 아니신가! 아직도 그 낡은 슬루프인가? 내가 '가져간' 배가 훨씬 좋았는데 말이야.
네가 판 건 배가 아니라 열두 명의 목숨이다. 오늘 그 값을 치러라.
짧고 사나운 포격전. 페레그린의 사격이 적 뒷돛대를 꺾었지만, 로치는 연막과 암초 사이로 미끄러져 사라졌다.
놓쳤어요… 그런데 함장, 보셨어요? 도주 항로가 이상해요. 상처 입은 배가 굳이 외해로 — 마치 누가 정해 준 항로로 '복귀'하는 것처럼.
사슬에 묶인 개는 제 집으로 돌아가는 법이지. …다음엔 그 집 문 앞에서 기다린다. — 2막 끝.
아바나. 조라가 항만 기록소에서 사흘을 뒤져 돌아왔다.
찾았어요. 만(灣) 동쪽 끝, 지도에 없는 사설 부두 — 뱃사람들은 '유령 부두'라고 불러요. 오스프리 전용이고, 보름달마다 '호위선'이 들어온대요.
로치의 집이군. …총독부 위임장으로 사설 부두를 칠 수 있나?
육지에선 안 되죠. 회사 변호사들이 벽이에요. 하지만 부두 '앞바다'라면 — 공해에서 해적기를 단 배를 잡는 건 우리 일이잖아요?
보름달에 유령 부두 앞바다에서 기다린다. 놈이 깃발을 올리는 순간 — 그 순간이 법이 허락하는 순간이다.
— 3막 「보름달의 약속」 개시. 다음 보름, 외해에서 매복이 시작된다.
보름달. 유령 부두 앞바다 — 등을 끈 페레그린이 파도 소리 속에 엎드려 있었다. 자정, 부두를 빠져나온 브리간틴이 회사기를 내리고 검은 기를 올렸다.
지금이다. 쐐기진 — 뱃머리로 파고든다!
달빛 아래의 짧은 해전. 페레그린은 포문을 버리고 속도를 택했고, 갈고리가 검은 기의 뱃전을 물었다. 갑판 위 — 두 자루의 검.
끈질기군, 함장! 왜 이렇게까지 하나? 배는 또 구하면 되잖아!
배 때문이 아니다. 네가 판 열두 명 — 그들의 이름을 법정에서 부르게 하려고 왔다. 검을 버려라, 코맥. 산 채로 데려간다.
긴 침묵 끝에, 검이 갑판에 떨어졌다. '검은 이빨'이 사슬에 묶인 밤 — 바다가 조용해졌다.
포트로열 법정. 피고석의 로치는 뜻밖에도 순순히 입을 열었다 — 살길이 그것뿐임을 아는 자의 목소리로.
반란은 내 죄요. 하지만 주문한 건 물수리요. 선금 절반, '사고' 후 잔금 — 각서에 다 있소. …사슬에 묶여 보니 알겠더군. 나는 5년 전부터 이미 묶여 있었소.
'사고 주문서'가 낭독되자 방청석이 술렁였다. 판결 — 로치 유죄, 단 증언을 참작해 교수대 대신 종신 노역. 오스프리 카리브 지점에 대한 수사 개시. 팔려 간 열두 선원의 수색과 배상 명령.
함장, 총독부에서 왔어요. 함장 복권장 — 그리고 현상금이요. 열두 명 중 아홉의 소재도 벌써 잡혔대요.
바다에는 법이 없다고들 하지. …오늘부터는 있다. 조라, 닻을 올려라 — 아홉 명을 데리러 간다.
— 대니얼 하트 편 완결. 복수는 판결이 되었고, 사냥꾼은 다시 함장이 되었다. (에필로그는 대단원 업데이트에서 이어진다)
몇 달 뒤, 바다 위에서 소식이 페레그린을 따라잡았다 — 런던발. 오스프리 상사가 무너졌다.
포트로열의 증언과 '사고 주문서'가 회사의 '손'을 밝혔고, 낭트의 어느 판결문이 위조의 '수법'을, 전면 공개된 어느 박물지가 마지막 상품 — 감춰진 항로 — 를 지워 버렸다. 투자자들이 달아난 회사는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그레일링은 야반에 전용선으로 도주하다 여울에 좌초해 붙잡혔다. 그가 믿은 해도가, 자기 회사가 위조해 둔 바로 그 해도였다는 것이 재판 기록의 마지막 줄이 되었다.
함장, 열두 명 전원 소재 확인이요. 마지막 한 명은 — 제 발로 배를 찾아오고 있대요.
그럼 마중을 나가야지. …사냥은 끝났다, 조라. 이제는 — 항해다.
— 대단원. 검은 수평선 너머로, 당신의 바다는 계속된다.
이즈미르, 언덕 위의 관측소. 아카데미에서 온 봉인 서한에는 현상 과제가 적혀 있었다 — 「대서양 박물지: 해류·해안·생물의 기록, 전 3권」.
대서양 전역이라… 니코, 이건 10년짜리 과제야. 그리고 10년 전에, 똑같은 바다에서 사라진 사람이 있지.
하산 선장님 말씀이군요. 스승님의 표본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스승님은 폭풍에 질 분이 아니야. 그분의 항적을 따라가면 — 박물지도, 진실도, 둘 다 찾을 수 있어.
브리간틴 '세헤르'에 측량 기구를 전부 실었습니다. 잉크도 스무 병요!
새벽이라는 이름의 배가 에게 해를 빠져나간다. 여백투성이 지도를 품에 안고.
선생님, 항해 중 관측 기록은 제가 정리할게요. 새 해역을 지날 때마다 박물지의 여백이 줄어듭니다!
좋아. 항구의 학자들에게 기록 사본을 팔면 여비도 되겠지. 지식이 밥을 사는 시대라니, 나쁘지 않아.
마데이라, 부두 옆 잡화 경매장. 난파선에서 건진 물건들 사이 — 낯익은 놋쇠 표본 상자가 있었다.
이 상자… 스승님 겁니다! 여기 새김, '잔단호'. 낙찰은 제가 하겠습니다 — 얼마든!
상자 밑바닥, 방수포에 싸인 항해 노트 한 권. 마지막 장에는 급히 갈긴 글씨.
「물수리가 항로도를 사겠다고 왔다. 거절했다. 저들은 바다를 감추려 한다 — 서쪽 무역풍대에서 다시 쓰겠다.」 …스승님, 폭풍이 아니었군요.
물수리라면… 오스프리 상사? 그들이 왜 해도를 감추려 하죠?
정확한 해도가 퍼지면 누구나 지름길을 알게 되니까. 독점의 반대말은 — 지식이야. 1막 끝. 무역풍을 타고 서쪽으로.
무역풍대 한복판. 사흘 밤의 폭풍이 지나가고, 세헤르는 주돛대가 부러진 채 표류하고 있었다.
선생님, 물이 이틀치뿐입니다… 신호탄도 전부 젖었어요.
수평선에서 슬루프 한 척이 곧장 다가왔다. 페레그린 — 뱃전의 포술장이 밧줄을 던진다.
운 좋은 학자네요. 우리가 아니었으면 물고기 박물지가 됐을 텐데.
박물학자라… 측량 기구가 배보다 비싸 보이는군. 어디까지 가시오?
스승님이 조난당한 해역을 찾고 있습니다. 10년 전, 이 무역풍대 어딘가… 마지막 관측치는 있는데, 해류를 몰라 역산이 안 됩니다.
해류라면 종이보다 뱃사람이 낫지. 그 관측치, 보여 주시오. — 대신 다음에 내 항로의 해도를 부탁하겠소.
— 2막 「역산」 개시. 과학과 바다 감각이 같은 항로를 그리기 시작한다.
페레그린에서 얻은 해류 기록과 스승의 마지막 관측치. 에민은 사흘 밤을 새워 도표를 겹쳤다.
됐다… 니코, 여기야. 표류 경로가 한 점으로 모여. 무역풍대 남쪽, 이름 없는 환초 해역.
그런데 선생님, 이상한 게 있어요. 이 해역, 요즘 상용 해도에는 '암초 위험, 접근 금지'로 칠해져 있는데… 옛 해도에는 아무 표시도 없어요.
…위험해서 칠한 게 아니라, 오지 말라고 칠했군. 해도에 자물쇠를 채운 자 — 물수리다.
— 조난 해역이 특정되었다. 금지된 좌표가, 초대장이 되었다.
역산된 좌표의 해역. 상용 해도가 '접근 금지'로 칠해 놓은 바다는 — 잔잔했다. 암초 표기는 거짓이었다.
수심 이상 없습니다! 해도가 통째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저기 — 환초 안쪽에!
하얀 모래톱 위, 반쯤 묻힌 늑골 — 표본선 잔단호의 잔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돌을 쌓아 만든 측량 기준점이 서 있었다.
…이 돌무더기, 스승님의 방식이야. 기준점 밑에 기록을 묻는 버릇까지. 니코, 파 보자.
방수 항아리 속에서 나온 것: 빛바랜 관측 일지, 그리고 아직 녹슬지 않은 놋쇠 단추 하나.
일지의 마지막 기록이… 작년 날짜다. 살아 계셔. 이 환초 어딘가, 아니면 해류가 닿는 다음 섬에. — 2막 끝. 수색을 시작한다.
환초 수색 사흘째 밤. 니코가 망대에서 소리쳤다 — 남서쪽 무인도 해안에 희미한 불빛.
새벽에 상륙한 해안에는 식은 모닥불 자리, 그리고 바위에 돌로 새긴 표식이 있었다 — 화살표와 'H'.
하산 선장님의 표식이야. 해류를 따라 다음 섬으로 옮겨 가신 거야. 살아서, 움직이고 계셔.
선생님… 그런데 이 발자국들, 저희 것보다 큽니다. 장화예요. 최근 것이고요. — 누군가 먼저 다녀갔어요.
물수리도 스승님을 찾고 있다는 거지. 산 증인을 지우려고. …그렇다면 이건 수색이 아니라 경주다. 니코, 돛을 올려.
— 3막 「해류의 끝」 개시. 표식이 가리키는 다음 섬으로, 그들보다 먼저.
표식을 따라간 세 번째 섬. 새벽 안개 너머로 — 가느다란 연기 기둥이 올라오고 있었다.
연기예요! 선생님, 사람이 피운 불이에요!
해안의 오두막. 유목으로 짠 서가, 조개껍데기로 눌러 놓은 원고 뭉치.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10년 치의 수염을 기른 사내.
…늦었구나, 에민. 조수 간만표대로라면 이틀 전에 도착했어야지.
스승님…! 10년입니다. 10년 동안 — 뭘 하고 계셨습니까.
쓰고 있었지. 박물지 둘째 권과 셋째 권. 종이가 떨어진 뒤로는 머릿속에다. — 그런데 이야기는 배에서 하자. 저 수평선의 돛, 네 친구는 아닐 테니.
물수리 경비선이 닿기 전에, 세헤르는 환초를 빠져나갔다. 경주의 승자는 — 새벽이라는 이름의 배였다.
이즈미르, 아카데미 대강당. 두 명의 저자가 단상에 올라 세 권의 책을 봉정했다 — 「대서양 박물지」 전 3권.
봉정에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사본 제한 없음 — 어느 왕국의, 어느 항해자든 베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강당 뒤편에서 물수리 반지를 낀 신사가 조용히 일어나 나갔다. 감출 수 없게 된 항로는, 더 이상 그들의 상품이 아니었다.
제자가 하나 물었었지. 왜 목숨을 걸고 지도를 그리느냐고. — 지도는 감추려고 그리는 게 아니다. 누군가 돌아올 수 있으라고 그리는 것이지.
…여백은 초대장이었어, 니코. 그리고 초대장은, 모두에게 보내야지.
— 에민 카라 편 완결. 박물지는 항구마다 필사되어 퍼져 나갔고, '접근 금지'로 칠해진 바다는 지도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에필로그는 대단원 업데이트에서 이어진다)
몇 달 뒤, 바다 위에서 소식이 세헤르를 따라잡았다 — 런던발. 오스프리 상사가 무너졌다.
전면 공개된 박물지가 회사의 마지막 상품 — 감춰진 항로 — 를 지워 버렸고, 낭트의 판결문이 위조의 '수법'을, 카리브의 증언과 '사고 주문서'가 그 '손'을 밝혔다. 투자자들이 달아난 회사는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그레일링은 야반에 전용선으로 도주하다 여울에 좌초해 붙잡혔다. 그가 믿은 해도가, 자기 회사가 '접근 금지'로 위조해 둔 바로 그 해도였다 — 하산은 그 대목을 읽고 오래 웃었다.
거짓 지도는 결국 그린 자의 발밑에서 찢어지는 법이지. …에민, 다음 항해 말인데 — 태평양 쪽 여백이 아직 넓더구나.
여백이 하나 지워졌으니, 다음 여백으로 가야죠. 니코, 잉크를 더 사자.
— 대단원. 검은 수평선 너머로, 당신의 바다는 계속된다.